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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개발자 희망보고서

개발자들이 한 번쯤 정리해야할 사항 그리고 고민해봐야 할 사항들을 기술사답게 잘 요약해놓아서 상당히 유용한 책이다. 하지만 ‘유용’하다고 ‘좋은’ 책이라고 권하기에는 좀 주저하게 되는데 그 까닭을 저자의 집필 의도와 실제 책 내용을 비교하면서 정리해보겠다.

저자의 집필 의도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한국인 다수의 정서를 충실하게 반영하여 원칙과 사례를 제시
둘째, 인문학, 경영학과의 접목을 시도하여 IT를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조망

첫번째 의도부터 짚어보자.
저자는 ‘외서들은 한국적인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서 … 한국인 다수의 정서를 충실하게 반영하여 원칙과 사례를 제시’하는 책을 써보고자 했다고 밝힌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저자의 의도가 제대로 실현되려면 두가지 차원에서의 ‘보편성’이 획득되어야 할 것같다. ‘한국인 다수의 정서를 충실하게 반영’이라고 표현했는데 그게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양이던 질이든 간에 ‘보편’적으로 한국 개발자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보편성’과 ‘한국인 … 반영.. 원칙과 사례’가 한국적인 특수성을 넘어서는 일반화된 법칙으로 추상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보편성’이 그 두가지인데 이 책은 이 두가지 모두 그리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첫번째 ‘보편성’ 측면에서는 우선 다양한 국내 사례, 현상들이 제시되고 그것들 간의 본질적인 관계/원인을 추적하는 무엇이 있어야 될 터인데 저자가 의욕적으로 밝힌 ‘한국인 다수의 정서’와 관계된 사례들이 그렇게 풍부하거나 생생한 것지는 않다. 그리고 이 문제는 두번째 ‘보편성’ 문제와 직접적으로 이어지는데 C사의 할인점 시스템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 사례도, G사의 ERP 프로젝트도 등등 저자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프로젝트 등은 한국에서 벌어졌다는 또는 한국 업체가 개발 주체였다는 거 외에 그게 ‘한국적’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을만한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두번째 ‘보편성’ 측면은 첫번째 ‘보편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그나마 이 책에서 제시한 몇가지 특수한 사례들에서 일반적인 결과/해답을 추론해내는 과정이 그렇게 명확해보이지도 않는다. 가령 ‘1원 입찰’ 등의 사례를 들면서 ‘지금 IT 서비스 업계의 원죄는 바로 저가수주다’라고 단정짓는데 나 역시 그 결과에 동의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이것이 저자나 나의 개인적인 IT 경험에서 나온 주관적인 결론을 넘어서려면 그 분석은 좀 더 세련될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럼 두번째 의도로 넘어가 보자.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는 기술만을 중시 … 인간에 대한 관심이 부족 … IT는 인문학, 경영학과의 접목을 시도하여 IT를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조망’ 하고 싶다고 피력하고 있다.

타 학문 영역과 접목을 시도하고 더 넓은 관점에서 조망할 필요에 대해서는 두 손, 두 발들고 동의하는 바이지만 이 책에서 다뤄진 인문학, 경영학과의 접목 시도는 ‘인용’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다.
가령 고객과 개발자 간의, 팀 내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개념을 인용해 설명할 수도 있지만 커뮤니케이션의 각 주체에 초점을 맞춰 인지심리학 통해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접근할 수도 있고 관계에 초점을 맞춰 네트워크 이론이나 ‘담론’이라는 사회학적, 철학적 방법을 이용해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례가 적절치는 않았지만 내가 생각하기 ‘접목’이라 할 때 이것은 단지 타 학문서에서의 인용 뿐만 아니라 분석 기법, 도구의 응용, 개념이나 용어 재정의 등 다양한 층위의 결합을 통해서 가능할 것 같다. 저자의 인문학/경영학적 지식 수준이나 독서량은 나를 훌쩍 뛰어넘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아쉽게도 의도했던 다학문 간의 접목 시도는 애초의 기대 수준을 그다지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장황하게 비판했지만 이런 수준의 개발자가 우리 주변에 팍팍 늘어나고 있는 점은 우리 모두에게 행운이고 강컴의 많은 전문 개발자의 후한 평이 보여주듯 많지 않은 분량에 알차게 다양한 정보 잘 모아놓아 책장에 꼽아놓고 수시로 봐줘도 좋을 만한 책이 우리 저자의 손으로 나왔던 점 뿌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점 모두 보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구본형 소장 추천사에 나오듯 ‘직장인이 책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일상적 체험을 이론화하여 범용적 실천 지식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훌륭한 자기계발이며 전문화의 길이다’ 라는 진실을 저자가 구체적인 실천의 결과물로 직접 보여주고 있다는 점 아닐까 싶다.

아 간만에 별거 아닌 내용으로 길게 블로그에 글 써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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